꿈을 꾸고 나면 단순히 꿈만 꾼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반응도 함께 온다. 가령 땀을 흘린다던지,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을떄는 몸이 제대로 있는지 살핀다던지, 꿈에서 안좋은 일을 당했을
때에는 체력이 저하되고 식욕이 없어진 다던지.. 단순히 꿈이 아니라 현실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꿈을 꾸는 일이 벌어질떄마다 이게 꿈인지, 아니면 나의 도플갱어가 나와 싱크되어
자고 있을때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지 정말 모를때가 많다.
이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가상현실화 체험기계를 구체화 한다면 가령 내가 자고는 있지만
밖에서 뛰어놀고 싶을때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버튼을 눌러주고 잠에 들고 나면 자고 있는 내내
어린아이처럼 뛰어노는 꿈을 꾸게 된다면 아침에 일어나면 잘 논것 같은 기분이 들고, 운동량으로
인해 몸이 개운해지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더 나아가서 내가 야구라는 운동을 배우고는 싶지만 야구라는 운동의 움직임을 몸을 써서 하지 않고
꿈으로 야구의 상황을 경험하고 나면 이미지트레이닝으로 인해 훨씬 더 야구를 쉽게 체득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은 벌써 매트릭스에서 프로그램다운이라는 상황을 통해 네오에게 주입되는 무술프로그램으로
보여진 바가 있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사람이 자기가 해보지 못했던 상황을 꿈속에서 먼저
체험함으로써 실제 체험을 통한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체험현실이 이뤄지게 되면 모든 것은 뇌에서 동작이 가능하기때문에 사람의 동작없이
뇌만 가지고서도 충분히 싱크를 맞출 수 있게 될 것이다. 꿈속에서 몸의 동작을 움직이지 않고도
뛰고, 걷고 도망치고 놀 수 있는건 뇌의 생각만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실제 육체는 가만히 있지만, 뇌의 움직임만으로 그런 가상체험이 가능하기때문에 뇌와의 싱크가
가능하다면 가상현실프로그램은 앞으로의 가장 큰 화두가 아닐까 싶다
더보기
글을 쓰고나서 혹시나 특허로 등록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검색을 해보니, 이미 꿈을 꾸어주는 기계 로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뉴스기사가 2004년이니깐 이제 대중화되었어야 하는데, 검색에서도뉴스기사외에는 다른 기사가 없다. 박사 이름으로 다시 검색해봐도 검색결과가 없어 더욱 궁금해진다.
자유란 단어는 항상 비교대상이 있어야 자유란 단어에 대한 의미를 비로소 느낄 수 있게된다.
전쟁이란 단어가 있어야 평화라는 말이 비로소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것처럼...
노무현 아래서 군생활 한다는 것 의 글을 보면, 사실 노무현때에 있었던 일들과 이명박때에 있었던
일을 비교해보면 어떤게 민주주의인지, 어떤게 자유인지, 어떤게 언론의 자유인지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세종시문제에 대해서 국민투표를 너무도 쉽게 제안했던 노무현이었지만, 4대강에서는 국민들이 반대를 하는데도
투표하자는 말은 한마디도 없이 예산배정한 채 밀어붙이고 있다.
시위대에 대해 최대한 시위를 보장해주려는 노무현이었지만 명박산성을 쌓고 시위대에 대해 강경진압을 하는
이명박이다.
그렇게 정부에 대해 독설을 쏟아붓는 언론사들이지만, 이제 정통부에서 언론사 사장에게 사직을 권유하는데도
조용한 언론사들이 있다.
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순응하고 있다면 자유란 단어는, 민주주의란 단어는 말그대로 백과사전에나 나오는
단어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실사회에 적용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딴 이야기지만, 이런것과 관련해 민노당에서 벌이고 있는 서울시장과 관련해 연대가 불가능하다며 독자노선을
벌이고 있는 노회찬의원에 대해 정말 할말이 많다. 민주주의는 쟁취하고 난 다음에나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이다.
노회찬의원에 대해 좋아하지만, 예전 80년대에 대학생들이 형사에게 쫓기면서 하는 토론에 너무 심취한 모양이다
현재의 모양새가 데자뷰가 되면서 그때와 비슷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왜냐면 지금은 한나라당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 중요한데도 내가 옳네, 네가 틀리네를 연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의 웹 현상을 보게 되면 웹1.0에서 웹 2.0으로 변화가 됐고 이제 웹3.0으로
변화할 차례인데, 그 다음 주자는 어떤게 될까?
사실 웹 2.0이란 단어는 마케팅용어라서 웹환경에 정확히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생각의 변화, 환경의 변화 라고 생각한다.
웹 1.0이 비교적 소수의 접속자와 인터넷이 느리고 보급이 느린 상태에서 최적화하기
위해 컨텐츠의 생산을 운영자가 담당하여 인터넷을 접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비에 치중했다면,
웹 2.0은 다수의 접속자와 세계적인 환경, 광랜의 보급 등의 쾌적한 인터넷환경으로
인해 다수의 사용자들이 직접 컨텐츠를 생산해 내는 상황에서 이전 컨텐츠의 생산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관리로 전환되었다는 것으로 변화의 요인을 찾고 싶다
그 이야기는 컨텐츠의 관리를 할 수 없도록 설계가 된 곳은 자연스럽게 도태가 되거나
그렇게 되도록 변화가 된다는 뜻이다.
게임에서도 동일한 상황이 적용된다. 이전에는 컴퓨터가 몹인 상황이었지만, 그렇다면
게임유저를 몹화 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온라인게임이 주가 되고 있다
다시 웹으로 돌아와서 앞으로 있을 웹 3.0에서는 검색의 변화를 꼽고 있다. 다수의 유저들이
검색을 즐겨찾기 용도(원하는 사이트로 이동하기 위한 게이트웨이)로 사용하고 있어
포털로의 유입이 활발하게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맨틱검색을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는 웹 3.0은 검색에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플랫폼의 변화에서 이루어 질듯 하다
웹이 곧 플랫폼이 되는 환경이라는 것인데, 최근 추진되고 있는 구글에서의 크롬OS를
이용하게 되면 부팅과 동시에 크롬OS가 실행이 되고 여기에서 문서편집,게임 실행,사진편집
위젯 실행 등의 기존 오피스,게임,포토샵 등의 컴퓨터에 깔려진 어플리케이션을 쓰던 환경에서
이제는 웹환경에 노출된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도록 구현되고 있다.
이것은 대단한 혁명인데 구글이 주도하고 있는 환경에 다들 동참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변화로 인해 크롬OS와 같이 기존에 사용되던 프로그램에 맞는 포맷대신,
새로운 통일된 포맷이 대세가 될 것이며, 이에 호환하려는 움직임이 보일 것이다.
그것은 윈도우에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아 설치하고 제거하듯이, 크롬os 에서 자기가 필요한
프로그램의 웹서비스를 즐겨찾기하고 제거하는 방식이기때문에 현재의 수준보다는 보다더
표준플랫폼을 따르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그래야만 표준os에서 웹서비스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단순히 컴퓨터에서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 스마트폰,이북,mp3 등의
인터넷연결이 가능한 무선기기들에서의 자유로운 문서작업과 저장이 가능한 시대가 온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에 대한 호불호와 사용성이 전제가 되어야 하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봤을때는
이렇게 변화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 회식자리에 나가는 것 보다는 집에서 책 보면서 쉬는게 좋다. 자신만의 시간 공간을 특히 중시한다.
+ 인맥은 소수와 깊은 친밀감을 나누는 편. 종종 아웃사이더 경향.
+ '지식'을 아주 중요한 키워드라 생각하고 호기심을 해결하거나 지식을 쌓는것을 중요시한다.
+ 매뉴얼도 잘 보고 책을 통한 지식습득에 거부감이 없으며 실제로 주변인들 보다 책을 더 많이 보는 편이다.
+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처리하는 것 보다 원리를 파악해서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시간에 구애되는 일에는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 dvd 음악 등등 수집욕이 있으며 활용하지 않더라도 모은다. (한곡 들어본 노래가 좋으면 그 가수의 전집을 구하려고 시도한다.)
+ 공부는 그런대로 잘하는 편이었는데 학업보다는 개인적인 관심이나 호기심을 느끼는 분야에는 전문가 수준으로 파고든다.
+ 집중형
+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것에 희열을 느낄때가 많고 그래서 특이한 것에 끌리는 경향도 있다. (호러, 컬트, 비주류문화 등)
+ 자신이 아는 분야는 답변해주고 싶어하고 잘 모르는것도 찾아내서 알려주려고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정보의 원천소스를 제공하는 것에는 거부감)
+ 자신의 아이디어를 남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스스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등의 이유.
+ 다량의 아이디어를 뿜어내기보다는 몇몇의 아이디어를 갈고 다듬는데 공을 들이며 그로인해 실행하는데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실행하지 않는다.
+ 어렸을때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편이었다. 지금도 외향적인 타입은 아니다.
+ 굳이 말하자면 통찰력이 있고 지적인 편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혈액형 이야기라든가 mbti 검사라는 것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못한다
이유는 혈액형의 경우 인간을 4등분으로 나눌 수 없고, 그나마 세분하여 나눈 mbti의
경우 자신에 불리한 것을 감추거나 자신이 되고 싶은 이상향 즉 현재의 모습보다는
자신이 되고 싶은 유형에 좀 더 체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한 커뮤니티에 인간관계에 대한 피곤하다는 내용을 걸었다가 어느분이
읽어보라고 한 유형인데, 거의 대부분 내가 느끼는 부분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혼란은 저런 일치하는 공감보다도,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유형의
사람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쟤는 너무 조용해, 존재감이 없어 라고 생각할지 모르는
스트레스와 그에 반해서 자기자신도 그로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인 관계때문에 생기는 피곤함, 그리고 거기서 생기는 자아와 타아와의 관계에서
오는 피곤함, 그리고 스트레스.....
현재 네이버의 뉴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누리꾼의 숫자는 하루 평균 120만 명 수준인데, 이 중에서 하루 평균 12만 건 가량인 댓글을 쓰는 누리꾼은 전체 이용자의 2.5%인 3만 명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뉴스 서비스 이용자의 0.25%가 전체 댓글의 50% 가량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라는 기사내용이다. 그 중에서 글을 한번이라도 쓰는 사람은 2.5%가량이며 댓글을 쓰고 있으며, 750명가량이
전체댓글의 50%이상을 장악하며, 또한 하루 20건 이상의 댓글을 양산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기사는 매우 흥미로운데, 뉴스 서비스 이용자중에서 750명 가량이 댓글 50%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반복적으로
댓글을 양산해 내고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이것은 그만큼 적은 인원을 가지고도 여론조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같은 사용자라 하더라도 댓글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서 노출된다면 같은 사용자임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슷한 댓글을 보고 여러 사용자들이 반대댓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근데 이건 사실 알게모르게, 심리학에서 나온 결론이 꼭 아니더라도 웹마케팅에서 쓰고 있는 방법이다
쇼핑몰에서 댓글조작, 지식인에서의 댓글광고글, 블로그의 광고글, 게시물에서의 광고 글등을 보더라도
이미 시행되고 있는 방법인데 이미 효과는 정확히 모르지만, 방법은 검증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막기위한 방법으로는 역시 추천/비추천서비스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
논란이되는 사람 즉, 추천수와 비추천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사람은 주의를 요한다고 하거나, 블랙리스트에 올리거나 글을 올리는 제한을 두거나 말이다.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 가 조중동 광고회사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시작한 것은 찬성.
재판에서 소비자 운동인 불매운동에 대해서는 정당함을 인정했기에 시작된 운동인데.. 이것은 본질적으로는
찬성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방안으로 조중동에 광고를 하며, 한겨레나 경향에 광고를 하지 않는 광고주들을 선별하여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은 좀 의아하다. 광고를 하고 안하고 하는 것은 광고주의 자유이다.
노골적으로 경향이나 한겨레에 광고를 안한다고 이쪽에 광고를 하라는 것은 어찌보면 협박처럼 들린다
이런 걸로 언론의 자유가 쟁취되겠냐 하는것은 좀 의심이 간다.
물론 지금 경향이나 한겨레의 재정상태가 그리 녹녹치 않다는 것은 어느정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생계형협박을 저지를 수 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조중동에 대한 광고를 중단하라라는 최초의 의도를 살리는게 더 취지도 살릴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조중동은 물론 재벌들에게 국민들의 경고를 보낼 수 있지 않는가 싶다.
그리고 한가지 더...
좌파신문들의 정부까는 행태가 조중동스럽지 않냐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엄연히 다르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과거 노 전대통령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언론의 자유는 찬성하지만 그것이 언론사주가 특권을 누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말그대로다. 사주에 의해 왜곡된 기사를 보여주는가? 다른사람들의 입김에 따라 기사의 논조가 달라지는가?
조중동이 보여준 그들의 권력에 대한 적극적인 찬양과 비열함은 검색사이트에서 조금만 검색해봐도 충분히
볼 수가 있다.
이 운동은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만 취지를 좀 더 알아들을 수 있게 바꾸는게 적극적인 불매운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짧다면 짧은 요 며칠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슬픈 일이라 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들 수 가 있는데...
짧은 유서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이 정도면 가히 그가 겪었을 고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볼때도 보는 것이 아니고, 글을 쓸때도 쓰는 것이 아닌 상황.. 자기 주위의 자기와 관련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사를 받고 압박을 받고 있으니.. 그 소식 하나를 들으면 들을 수록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어째 심한 비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죽음은 꼭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생각난다
격동의 시대에 영웅이면서도 오히려 조정에서는 핍박을 받고는 최후의 전투에서 전사(김훈의 소설에서는
자살했다는 설이 있음. 더군다나 칼의노래는 노전대통령이 즐겨 읽었다는 책) 하여 오히려 이름이
역사에 기록되게 되는데.. 마치 그의 드라마틱하고 굳센 삶은 이순신장군의 그것을 생각나게 만든다.
또 하나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비극적이면서도 미스테리가 가득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만큼이나
두고두고 회자 될 대통령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